프로 내향러지만 축제 기획자입니다.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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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내향러는 왜 축제기획을 업으로 삼았나


내향인이라면 대다수가 그렇듯 20대의 나는 내가 내향인인게 싫었다. 활기차고 야무진 외향인들과 친구를 삼으며 그 친구들처럼 나를 바꿔가고자 노력했던 젊은 날이었다. 20대 초반, 대학교 휴학을 하고 나의 소심한 성격을 바꿔보고자 난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서울을 대표하는 공연장 하우스 어셔를 덜컥 지원해버린 것이다. 서울과는 한참이나 먼 지방에서 살면서 공연과 관계없던 전공을 하던 나에게 서울의 공연장 아르바이트는 당시의 나에겐 큰 도전이었다.


어쩌면 지방보다 좀 더 큰 세상을 경험하면서 나를 바꿔나가고 싶은 마음이 컸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한 하우스 어셔 생활은 힘들기도, 버겁기도, 또 즐겁기도 하였다. 내향인들에겐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기까지 어느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곳에서 나는 나름대로 새로운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 명의 친구를 집중공략하며 친해지려고 노력했고 그러한 노력의 시간들은 어느덧 11개월을넘어 동기라는 끈끈한 우정으로 넓혀졌다. 그렇게 20여명이던 입사동기(?)들은 6명으로 줄어 소수의 정예부대들과 함께 성공적으로 아르바이트 생활을 마무리하고, 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러한 20대의 도전은 자연스럽게 나를 공연과 연관된 축제로 이끌었다.


 축제를 찾아오는 수많은 관객들



내향인이 축제에서 일하는 법 🎇


그렇게 내향인의 축제 스탭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가 일했던 축제는 공연예술제로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였고, 5일 남짓의 축제를 진행하는데 천 여명의 출연진들과 스탭들, 3백여명의 자원봉사들이 함께하는 큰 축제였다. 나의 업무는 기획팀으로 공연프로그램의 전반적인 기획과 출연진 섭외, 현장 공연 운영이 주된 일이었는데 나에게 주어진 수없이 많은 일들 중에서 극복해야 할 첫번째 업무는 바로 출연진 섭외전화였다.


일단 조용한 사무실 안에서 전혀 모르는 출연진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는데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 모두가 내 전화통화를 듣고 있는 것 같아 너무 부끄러웠고, 통화를 하다가 내가 모르는 질문들에 당황해서 버벅거릴까봐 무서웠다. 콜 포비아까진 아니었지만 내 나름대론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던 업무였다.

나는 마치 면접을 준비하듯이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마자 해야 할 내 소개부터 시작해서 공연의 내용, 세부적인 정보 등을 내 나름대로 정리하였고, 예상질문들까지도 작성하여 대비하였다.


두번째 관문은 대기실이었다. 흔히 백스테이지라고 불리는 공연장 뒤 수많은 무대 스탭들 사이에서 난 출연진을 공연시간에 맞게 준비시키고 케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출연진분들은 공연 전 컨디션 관리 때문에 대기실 문을 닫아놓는 편이었는데 공연 준비를 위해서 스탭들이 대기실을 들락달락 거리는 것은 빈번한 일이었다. 

내 역할을 무리 없이 수행하기 위해선 대기실 문을 여는 것이 아무렇지 않아야 했지만 이 또한 나에게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일이었다. 간혹 대기실 내에 지인분들이 많이 계실 때면 문을 여는 순간 나에게 주목되는 눈빛들 때문에 조용히 문을 닫았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무대 뒤에서 빛나는 축제 스탭들



나를 지탱해준 사람들 덕분에 해낼 수 있었던 축제생활 


축제 스탭들에겐 폐막날이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려온 날이다. 물리적, 정신적으로 한계에 임박했을 때 비로소 축제가 끝나기 때문이다. 하루에 2만보 넘게 움직여야 하는 체력적인 한계로 힘든 것도 있었지만 내향인인 축제 스탭에겐 일년에 만나는 사람보다 더 많은 수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겪는 5일이기 때문에 정신적인 피곤함은 이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해 축제가 끝날 때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이라고 한탄했고 다음번 축제는 기필코 하지 않겠다(!)며 다짐을 했었다.


매해 그런 말들을 남기며 10년 가까이를 일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일할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바로 함께 도와주는 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축제를 한해 한해 보낼수록 함께 일하는 스탭들과는 정말 끈끈한 전우애 같은 것이 피어났다. 내향인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어색하지만 시간이 지나 친해진 사람들 사이에선 그 누구보다 편하고 활기차진다. 축제 스탭들과의 우정을 넘어선 전우애는 힘든 상황에서도 나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었다. 어쩌면 전우 같은 내 사람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이렇게 오래 일했던 거였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내 열정을 다 바친 축제를 떠나 새로운 일을 위해 도전하고 있지만 축제에서 일하며 얻은 사람들과의 우정은 아직도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 축제를 10년 가까이 겪으며 나는 사회화된 내향인이 되었고 이제는 대본없이도 사무실 안에서 당당히 전화를 할 수 있고, 대기실 문도 벌컥벌컥 열수 있을 만큼 발전(?)할 수 있었다.


내향인이라서 맞지 않는 업무는 없는 것 같다. 지극히 외향적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어쩌면 수많은 관문을 극복하고 서있는 내향인일 수도 있다. 지금도 묵묵히 많은 관문들을 극복하고 헤쳐나가는 내향인들에게 조용히 응원을 보내고 싶다.




👩🏻‍💻저자 | 라온곰 (@raonlyz)

진정한 나의 모습과 어울리는 삶과 일을 찾기위해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사회화된 내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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