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의 나라, 핀란드에 살고 있습니다.

202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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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적어서 서로에게 거리를 두며 살았던 환경과 어둡고 추운 겨울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습관 탓에 핀란드인들은 개인공간과 사생활을 존중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 주어진 환경 탓인지 대부분의 핀란드인들이 조용히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긴다. 특히, 숲 속, 호수, 바닷가 등과 같은 자연에서의 휴식을 즐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방해하는 것도 극도로 꺼리는 성향이 강하다. 코로나로 외출을 자제하던 시절, 많은 핀란드인들이 조용한 휴식을 위해 습관처럼 자연으로 향하는 바람에 오히려 숲 속이 붐비기도 했다. 


핀란드에선 직장 동료, 이웃, 자녀 친구의 부모, 자주 가서 얼굴을 익힌 상점 점원과 마주치면 '안녕'하는 정도의 인사나 눈웃음을 나누는 정도를 충분한 의사소통으로 받아들인다. 영어에서 인사로 치부하는 안부를 묻는 질문인 Mitä Kuuluu?(미따 꾸울루?, How are you?)는 가벼운 인사가 아니다. 상대방의 근황이 진심으로 궁금해서 그 답을 길게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질문이다. 모든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는 핀란드인들에게 영어에서 스몰토크(small talk)라고 하는 가벼운 대화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핀란드인들은 침묵은 대화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반면, 예의 차리는 의미 없는 대화는 오히려 불편해하는 편이다. 


핀란드엔 'Hiljaisuus on kultaa, puhuminen hopeaa. (침묵은 금이고 대화는 은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집 근처에서 바라본 헬싱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그 시간을 서로 존중하다 보니 핀란드인들이 무뚝뚝하고 무표정하다는 오해를 자주 산다. 내향인들이 대체로 대중에게 조용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내향인들도 대화에 온전히 집중해 주는 청자가 하나나 둘이 있으면 놀랍도록 재밌고 수다스러울 때가 있다. 핀란드인들이 이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라 친해지려면 좀 지나치지 않을까 싶게 한발 더 다가서야 할 때가 많다. 그렇게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면 의외로 그들의 다양한 표정과 지나친 솔직함을 마주하는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 


친한 친구라도 사생활을 존중하고 방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부모에게서 독립하면 부모와 자녀의 사생활도 존중하느라 서로를 방문하는 것도 미리 양해를 구한다. 어쩌다 보니 딱히 만나자고 할 이유가 없던 올해는 절친을 크리스마스 선물 교환이라는 이유로 한 번만 만나게 되었다. 사실 친구딸이자 내 대녀의 생일파티에 초대되었는데, 선약이 있어 파티에 참석하지 못한 것도 한몫했다. 선약으로 파티에 참석하지 못하는 건 서운한 일이지만, 각자의 사생활이 있으니 쉽게 수긍하고 과한 감정 낭비를 하지 않는 게 자신에게 집중하는 핀란드 내향인들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집 근처 해변에서 자전거를 타는 남편, 두 아이들과 함께





👩🏻‍💻 저자 : 홍지현      

전직 UI/UX 디자이너, 생각 많은 관찰자, 이방인, 북유럽연구소 객원연구원, 작가를 꿈꾸는 내향인. 
브런치와 얼룩소에 핀란드에 관한 글과 아이들 일상을 기록합니다. 

👉🏻 브런치 : https://brunch.co.kr/@strangerji

👉🏻 얼룩소 : https://alook.so/users/vZtD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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