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시작하게 된 마케팅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도 모르던 대학생 시절, 인턴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마케팅을 시작했다.
따로 경영학 복전을 하거나 관련 수업을 듣지도 않아서 마케팅의 "ㅁ" 자도 모른 채 출근했다. 다행히 작은 기업이었던 데다 대표님이 좋은 분이셔서 차근차근 조금씩 배우며 일을 해나갈 수 있었다.
마케팅에도 여러 분야가 있지만, 내가 주로 했던 일은 우리 브랜드에 관심을 보인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었다.예를 들면 브랜드 공식 인스타 계정에 올라갈 게시물을 기획하거나, 크라우드 펀딩을 위해 우리 제품을 소개하는 페이지를 만들거나 하는 것들. 그러면서 1순위로 신경써야 했던 것은 우리 콘텐츠를 접할 소비자들의 관심사와 생각이었다. 고객은 무엇을 원하고 어디에 반응하는가. 그걸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이런저런 콘텐츠를 만들었다. 다행히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나는 짧았던 인턴 기간이 끝난 후 대학원 진학을 택했다.
대학원 진학과 방황 : “나는 외향인? 내향인?”
안타깝게도 대학원 생활은 영 나에게 맞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혼자 고민하고 생각하는 일을 좋아하던 내게 왜 대학원 생활이 맞지 않았을까. 자퇴를 결정하기 전 내가 내렸던 결론은, 나는 책상에 앉아서 잠자코 공부하고 연구만 하는 게 적성에 안 맞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바깥에 관심을 쏟는 데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외향적이라고 생각했다. 외향적이기 때문에 마케팅 업무도 재미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될 콘텐츠를 만들 때 보람을 느끼는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나는 사람과 만나는 일이 나날이 피곤해졌다. 내가 미리 고민하고, 기획해서 사람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그 반응을 얻는 일은 괜찮았지만, 아무것도 예상치 못한 채 누군가 앞에 나서야 하는 일은 언제나 스트레스였다. 연락하는 사람도, 단톡방의 수도 줄어 갔지만 편안하기만 했다. 내 곁에 최소한의 사람, 딱 소중한 사람들만 남아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즈음 깨달았던 것 같다, 나는 내향인이구나.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 내향인. 관심을 가지긴 하지만 너무 많은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진 않은 사람. 딱 그정도인 듯 했다.
대학원 시절, 정말 열심히 공부했지만 내 안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이 견디기 어려웠다.
다시 바깥으로, 하지만
대학원을 그만두고 다시 마케터로 취업하여 나는 마케팅이라는 업무에 대해 좀 더 진지한 자세로 임하게 되었다. 인턴 때에 비해 벌써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이미 "여긴 확실하다"고 여겼던 진로에서 실패를 맛보기도 했으니. 그러면서 전보다 더 다양한 분야의 마케팅을 경험했고, 많은 걸 배웠으나 내가 이 일을 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자주 들었다. 무언가 톡톡 튀는, 잠재적인 고객들을 흔들어 놓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으나 쉽지 않았다. 딱 그런 기분이었다. 고객이 무엇에 반응할지, 우리 브랜드의 무엇을 내세워야 할지를 이해한 후, 그 이해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좋아하고 주목할만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됐다. 간단히 말해서 이해까지는 됐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도 알겠는데 내가 실제로 그것을 구현해내는 게 벅찼다. 어딘가의 자료나 인터뷰에서 보는 재능 있는 마케터들을 보면 정말 반짝반짝한 아이디어를 뽐내는데 나는 왜 그런 게 없을까,
그렇게 고민과 고민만 거듭하던 중 직장 위치가 너무 멀어지면서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모아둔 돈이 많이 없는 상태로 이직할 상황에 처했기에, 어디든 빠르게 취직하려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당연하다는 듯이 또 다시 마케터 직무로 지원했고, 다행히 괜찮은 곳에 합격할 수 있었다. 여전히 마케터로 일 잘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게 답이 아닐까 싶었다.
대학원을 그만두고 맞는 봄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나에게 맞는 길을 다시 찾아갈 수 있다는 기대에 잠겼다.
마케터가 아닌, 또 다른 길
이직한 직장에서 나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마케팅 정말 좋아하세요?” 그때 고민의 정점에 다다랐던 것 같다. 나는 정말 마케팅을 좋아하고, 잘 하는가. 하룻밤을 꼬박 왔다갔다 하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마케팅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잘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고. 나보다 훨씬 더 다양한 사람과 많이 소통하고 그들에게 관심이 많은 외향적인 사람이어야 마케터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전히 나는 잠재 고객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할지를 정하고, 고객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적성에 잘 맞다고 느꼈고 그런 일을 계속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 적성을 제대로 살리는 건 마케터로 사는 게 아니라, 좀 더 포괄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것, 즉 기획자가 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러한 점을 알아가면서 나는 기획으로 팀을 바꾸었고, 마케터로 일할 때보다 훨씬 더 잘 적응하고 있다.
내가 내향인으로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일
이렇게 직무를 바꿔가며 내가 깨달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는 게 첫 번째였다. 그러면서 내가 내향인으로서 최대한 해낼 수 있는 일은 사람을 상대로 직접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할지 기획하고, 그 결과를 분석하는 것 정도라는 걸 두번째로 깨달았다. ‘나는 내향적이지만 사람에게 관심이 많으니 마케팅도 잘 할 수 있어!’라고 무작정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내향인으로서 잘 하면서 내 관심사도 녹여낼 수 있는 길은 다른 데 있다는 걸, 나는 결국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이 일에 맞는지, 앞으로도 잘 할지 고민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보자. 내가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내 성격을 바꿀 필요 없이,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 모두를 실현하면서.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내가 ‘나 자신’이 아니게 된다면, 어쩌면 그 길이 아니라 다른 길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기획자로의 진로를 걷기 시작한 직장에서 입사 첫 주, 포츈쿠키에서 나온 문구가 꼭 내 삶 같았다.
"아무것도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별빛이 나를 꿈꾸게 만든다."는 빈센트 반 고흐의 말처럼,
아직도 나 자신에 대해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나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
👩🏻💻 저자 | 린 (@onlyonerin09)
내가 사랑하는 소수의 사람들과 언제까지나 오밀조밀 함께 지내는 것이 꿈입니다.
읽고 쓰는 게 가장 좋은 사람. 요즘은 새싹 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마케팅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도 모르던 대학생 시절, 인턴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마케팅을 시작했다.
따로 경영학 복전을 하거나 관련 수업을 듣지도 않아서 마케팅의 "ㅁ" 자도 모른 채 출근했다. 다행히 작은 기업이었던 데다 대표님이 좋은 분이셔서 차근차근 조금씩 배우며 일을 해나갈 수 있었다.
마케팅에도 여러 분야가 있지만, 내가 주로 했던 일은 우리 브랜드에 관심을 보인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었다.예를 들면 브랜드 공식 인스타 계정에 올라갈 게시물을 기획하거나, 크라우드 펀딩을 위해 우리 제품을 소개하는 페이지를 만들거나 하는 것들. 그러면서 1순위로 신경써야 했던 것은 우리 콘텐츠를 접할 소비자들의 관심사와 생각이었다. 고객은 무엇을 원하고 어디에 반응하는가. 그걸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이런저런 콘텐츠를 만들었다. 다행히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나는 짧았던 인턴 기간이 끝난 후 대학원 진학을 택했다.
대학원 진학과 방황 : “나는 외향인? 내향인?”
안타깝게도 대학원 생활은 영 나에게 맞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혼자 고민하고 생각하는 일을 좋아하던 내게 왜 대학원 생활이 맞지 않았을까. 자퇴를 결정하기 전 내가 내렸던 결론은, 나는 책상에 앉아서 잠자코 공부하고 연구만 하는 게 적성에 안 맞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바깥에 관심을 쏟는 데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외향적이라고 생각했다. 외향적이기 때문에 마케팅 업무도 재미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될 콘텐츠를 만들 때 보람을 느끼는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나는 사람과 만나는 일이 나날이 피곤해졌다. 내가 미리 고민하고, 기획해서 사람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그 반응을 얻는 일은 괜찮았지만, 아무것도 예상치 못한 채 누군가 앞에 나서야 하는 일은 언제나 스트레스였다. 연락하는 사람도, 단톡방의 수도 줄어 갔지만 편안하기만 했다. 내 곁에 최소한의 사람, 딱 소중한 사람들만 남아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즈음 깨달았던 것 같다, 나는 내향인이구나.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 내향인. 관심을 가지긴 하지만 너무 많은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진 않은 사람. 딱 그정도인 듯 했다.
대학원 시절, 정말 열심히 공부했지만 내 안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이 견디기 어려웠다.
다시 바깥으로, 하지만
대학원을 그만두고 다시 마케터로 취업하여 나는 마케팅이라는 업무에 대해 좀 더 진지한 자세로 임하게 되었다. 인턴 때에 비해 벌써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이미 "여긴 확실하다"고 여겼던 진로에서 실패를 맛보기도 했으니. 그러면서 전보다 더 다양한 분야의 마케팅을 경험했고, 많은 걸 배웠으나 내가 이 일을 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자주 들었다. 무언가 톡톡 튀는, 잠재적인 고객들을 흔들어 놓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으나 쉽지 않았다. 딱 그런 기분이었다. 고객이 무엇에 반응할지, 우리 브랜드의 무엇을 내세워야 할지를 이해한 후, 그 이해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좋아하고 주목할만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됐다. 간단히 말해서 이해까지는 됐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도 알겠는데 내가 실제로 그것을 구현해내는 게 벅찼다. 어딘가의 자료나 인터뷰에서 보는 재능 있는 마케터들을 보면 정말 반짝반짝한 아이디어를 뽐내는데 나는 왜 그런 게 없을까,
그렇게 고민과 고민만 거듭하던 중 직장 위치가 너무 멀어지면서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모아둔 돈이 많이 없는 상태로 이직할 상황에 처했기에, 어디든 빠르게 취직하려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당연하다는 듯이 또 다시 마케터 직무로 지원했고, 다행히 괜찮은 곳에 합격할 수 있었다. 여전히 마케터로 일 잘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게 답이 아닐까 싶었다.
대학원을 그만두고 맞는 봄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나에게 맞는 길을 다시 찾아갈 수 있다는 기대에 잠겼다.
마케터가 아닌, 또 다른 길
이직한 직장에서 나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마케팅 정말 좋아하세요?” 그때 고민의 정점에 다다랐던 것 같다. 나는 정말 마케팅을 좋아하고, 잘 하는가. 하룻밤을 꼬박 왔다갔다 하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마케팅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잘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고. 나보다 훨씬 더 다양한 사람과 많이 소통하고 그들에게 관심이 많은 외향적인 사람이어야 마케터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전히 나는 잠재 고객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할지를 정하고, 고객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적성에 잘 맞다고 느꼈고 그런 일을 계속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 적성을 제대로 살리는 건 마케터로 사는 게 아니라, 좀 더 포괄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것, 즉 기획자가 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러한 점을 알아가면서 나는 기획으로 팀을 바꾸었고, 마케터로 일할 때보다 훨씬 더 잘 적응하고 있다.
내가 내향인으로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일
이렇게 직무를 바꿔가며 내가 깨달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는 게 첫 번째였다. 그러면서 내가 내향인으로서 최대한 해낼 수 있는 일은 사람을 상대로 직접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할지 기획하고, 그 결과를 분석하는 것 정도라는 걸 두번째로 깨달았다. ‘나는 내향적이지만 사람에게 관심이 많으니 마케팅도 잘 할 수 있어!’라고 무작정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내향인으로서 잘 하면서 내 관심사도 녹여낼 수 있는 길은 다른 데 있다는 걸, 나는 결국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이 일에 맞는지, 앞으로도 잘 할지 고민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보자. 내가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내 성격을 바꿀 필요 없이,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 모두를 실현하면서.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내가 ‘나 자신’이 아니게 된다면, 어쩌면 그 길이 아니라 다른 길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기획자로의 진로를 걷기 시작한 직장에서 입사 첫 주, 포츈쿠키에서 나온 문구가 꼭 내 삶 같았다.
"아무것도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별빛이 나를 꿈꾸게 만든다."는 빈센트 반 고흐의 말처럼,
아직도 나 자신에 대해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나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
👩🏻💻 저자 | 린 (@onlyonerin09)
내가 사랑하는 소수의 사람들과 언제까지나 오밀조밀 함께 지내는 것이 꿈입니다.
읽고 쓰는 게 가장 좋은 사람. 요즘은 새싹 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