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에게 필요한 시간과 공간의 여백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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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가 된 지 반년이 지났을 때, ‘알음알음’이라는 프리랜서계의 진리를 깨닫고 나니 

내 좁은 인맥을 넓힐 필요를 느꼈다. 



마침 연말이라 SNS 여기저기서 프리랜서 모임 소식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커다란 장벽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낯선 사람 만나기를 어려워하는 나의 내향성. ‘여기 신청해 볼까?’ 하다가도 ‘아, 좀 무서운데…’ 하며 뒤로가기를 반복하던 그때. ‘파인더스 클럽’ 멤버 모집 게시글을 발견했다.



200명 규모의 커뮤니티에서 내향인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파인더스 클럽은 ‘요즘 것들의 사생활’에서 운영하는 커뮤니티로, 나다운 일과 삶의 방향성을 탐구한다는 컨셉과 서로의 레퍼런스를 나눌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어서 신청했다. (사실 여기에는 신청할지 말지 고민하는 사이 정원이 차서 조기 마감되었다가 극적으로 풀린 취소표를 겨우 잡았다는, 내향인이라면 마냥 웃지 못하고 조용히 공감할 만한 비하인드가 있다.) 


그동안 어떤 모임에도 속한 적 없는 내가 무려 200명 규모의 커뮤니티에 들어가다니! 누군가에겐 별일 아닐지 몰라도 내 기준으로는 하늘과 땅이 뒤집힌 것 같은 도전이라 기대보다 걱정이 더 앞섰다. 그런데 막상 활동을 시작해 보니 웬걸. 고민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아주 편안했다. 낯선 사람이 200명이나 있는데도 즐거웠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이곳은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확보된 환경’이기 때문이라는 걸.


파인더스 클럽은 텍스트 혹은 화상 화면만으로도 충분히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기반 커뮤니티이며, 단발성 모임이 아닌 3개월 동안 활동 기간이 보장된다. 즉, 초면인 사람들 사이에 앉아 불편한 적막을 견딜 필요 없이 천천히 내 템포대로 익숙해져도 얼마든지 괜찮은 곳이다.


파인더스 클럽 활동이 이루어지는 디스코드 (온라인 메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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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에게 시공간의 여백이 필요한 이유


회사에 다녔을 때, 주변에 멋지고 다정한 동료들이 많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나에게는 조직 생활 자체가 잘 맞지 않았다. 외부의 자극에 예민해 무엇이든 천천히 소화할 공백이 필요한 나는 시공간의 거리감이 가까운 조직 생활이 늘 힘겨웠기 때문이다.

업무 메신저는 끊임없이 울리고, 하루 일정은 회의로 가득 차 있고, 각종 요청은 늘 예고 없이 치고 들어오기 마련이었다. 여러 사람이 빠르게 발맞춰야 하는 조직에서 내 속도만 고집할 순 없으니 결국 다 해내긴 했지만, 그 뒤에 허물어지는 나까지는 어찌할 수 없었다.

특히 연차가 쌓이면서부터는 협업해야 하는 범위와 빈도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서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를 느꼈다. 점심시간, 커피 챗, 회식 자리를 라포 형성의 기회로 삼으며 윤활하게 협업하는 사교적인 동료들과 달리, 나는 스몰 토크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다. 그런 내가 너무 못나 보였다.

결국 견디지 못해 퇴사한 후, 한동안 나는 영영 어딘가에 속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커뮤니티 활동을 꺼린 것도 같은 이유였다.하지만 이제는 안다. 충분한 시공간의 여백만 있다면 내향인도 낯선 사람과 얼마든지 편안하게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내향인에게 시공간의 여백이 주어지면 일어나는 일


1. 모르는 사람과 친해질 수 있다. 🙆

파인더스 클럽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눈앞에 있는 사람과 당장 인사하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자기소개 글을 올린다. 내 소개를 올리면 다른 멤버들이 읽고 댓글을 달아주며 서로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나 역시 내 시간과 마음이 될 때 댓글을 달거나 이모지를 누르면 된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럽게 눈에 익는 닉네임이 생기고 내적 친밀감이 쌓인다.


2.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

첫 한 달 동안 나는 다른 멤버의 자기소개를 꼼꼼히 읽고, 공감대를 발견하면 신중하게 댓글을 달고, 찰떡같이 어울리는 이모지를 찾아 누르기를 반복했다. 상대의 말에서 섬세한 의미를 곧잘 찾아내며, 나의 말을 전하기 전에는 두 번 세 번 생각하는 지극히 내향인다운 방식으로. 그러다 보니 어느새 첫 달에만 스무 명 이상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오프라인이었다면 한 명에게 말을 걸기도 힘들었겠지만, 온라인에서 댓글로 소통하니 내향인도 얼마든지 적극적으로 네트워킹할 수 있었다. ‘외향적-적극적’, ‘내향적-소극적’은 동의어가 아니며, 어떤 적극성은 오히려 내향성에서 나오기도 한다.


3. 모임의 진행자가 될 수도 있다. 🎙️

대화의 흐름을 예민하게 포착하며 관심 있는 주제에 깊게 파고드는 내향인은 사실 진행자의 면모를 갖췄다. 파인더스 클럽에서는 누구나 온라인 토크 세션을 열 수 있는데, 나 역시 용기 내어 ‘뉴스레터 발행자 & 발행예정자들의 고민 이야기’라는 주제로 토크를 진행했다. 설문을 통해 참여자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미리 파악한 다음, 토크 2시간 전부터 비슷한 고민끼리 묶어서 토크 소재의 순서를 정했다. 토크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멤버의 말을 놓치지 않도록 메모하고, 토크가 끝나면 대화 내용을 복기해 문서로 정리했다.덕분에 멤버들로부터 진행을 부드럽게 잘한다는,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칭찬까지 들었다. 내향인은 즉흥적인 대화에는 약할지 몰라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훌륭한 진행자가 될 수 있다.



 직접 주제를 정하고 진행한 온라인 토크 세션



오늘도 ‘신청하기’ 버튼 앞에서 고민하는 내향인에게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200명과 친해지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 활달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나를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머릿속에 ‘사교적인 일잘러’의 환상을 만들어두고 나 혼자 찔리곤 했다. 초면에 쉽게 친해지는 사람은 그 사람의 강점을 발휘한 것일 뿐, 내가 똑같이 하지 못한다고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내 방식대로 하면 된다. 내 방식대로 해도 되는 커뮤니티를 찾으면 된다. 내 이야기를 하기까지 필요한 로딩 시간은 다소 길지만, 그만큼 정제된 언어로 세심하고 솔직담백하게 소통할 수 있는 내향인의 방식으로.



 

👩🏻‍💻 저자 | 문프랜

혼자 구석에서 조용히 쓰고 사부작 만들기 좋아하는 프리랜스 콘텐츠 에디터. 나의 내향성이 고쳐야 하는 단점이 아닌, 그저 하나의 특성으로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을 찾다가 프리랜서가 되었습니다.

👉🏻 문프랜님의 인스타 : @lolxxh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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