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도 사람을 좋아해요.

202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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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날 때 내향인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


글쓰기 모임의 첫날. 10명쯤 한 공간에 모여 있다. 어색한 공기가 흘렀지만 자기소개를 시작하니 한 명씩 개성이 보인다. 급한 성격에 뽀글거리는 머리가 귀여운 분도, 당차고 똑 부러지는 대학생도, 독특한 분위기의 장발을 가진 분도 계셨다. 

고요해 보이는 내향인의 내면에는 온갖 생각이 소용돌이친다. ‘어떻게 저렇게 말을 잘하지?’, ‘생각이 정말 멋진 분이다…’, ‘어쩜 정말 귀여우시다’. 바깥으로는 어떤 말도 내뱉지 않지만 혼자 발견한 장점들을 마음속에서 조잘거린다. 그렇게 내향인에게는 내적 친밀감이 쌓인다. 외향인이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며 상호 간의 친밀감을 쌓아나간다면, 내향인인 나는 저 멀리서 바라보고, 관찰하고, 혼자 친밀감을 쌓는다. 

내향인이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거란 생각은 편견이다. 좋아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 뚝딱거리는 겉모습 뒤에 사람 좋아하는 내향인도 숨어 있다. 누구보다 ‘금사빠’처럼 사람의 좋은 면을 발견하고야 만다.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외양과 표정, 말투와 표현으로부터 드러나는 저마다의 매력과 장점이 있다. 


사실 장점을 발견하는 능력은 내향인이기에 가질 수 있는 게 아닐까? 말을 걸기 전에 먼저 상대방을 자세히 살피거나, 표정과 말투까지 섬세하게 보는 습관은 사람의 장점을 발견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눈치 보는 성격이 싫었던 적도 있지만, 눈치를 섬세함과 관찰력으로 바꾸어 표현한다면 내향인의 파워풀한 능력 중 하나가 된다. 


오프라인 모임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모임에 자주 나가는 내향인도 있나요?”


취미와 취향에 기반한 모임이 점점 많아지는 요즘이다. 호기심에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 팟캐스트 모임 등에 참여해봤다. 나를 알던 주변 지인은 내가 모임에 나가는 게 신기한지 ‘내향인도 모임에 자주 나가는지’ 묻곤 한다. 실제로 모임에 가면 생각보다 내향인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글쓰기나 독서처럼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일을 목적으로 하는 모임에서 내향인이 절반을 넘기도 한다. 


물론 몇 년 전 나와 맞지 않는 창업 네트워킹 모임에 나가서 에너지를 소진하고는 온종일 앓아 누웠던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역시 사람 많은 모임에 나가지 말아야겠다고 믿었다. 하지만 맞지 않은 건 모임 자체가 아니라, 모임의 성격이었다. 내향인에게 잘 맞는 성격의 모임이라면 충분히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조곤조곤한 말투로 상대방을 신경 쓰며 천천히 대화하는 모임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취미나 생각을 나누는 일이 즐거웠다. ‘모임도 할 만하구나!’ 생각했다.



내향인, 모임장이 되다.


여러 모임에 나가다 보니 모임을 만드는 일에도 관심이 생겼다. 무언가 시작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난생처음클럽’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모임장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모임에 참여하는 것과 모임의 장이 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첫 비대면 모임이 끝나고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긴장한 게 티가 나지 않았을까? ‘완전 망했다’라는 말만 되뇌었다. 그런데 모임원에게서 들은 말은 뜻밖이었다. “라디오 듣는 것 같이 편안했어요”, “다른 분들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내향인이 모임장일 때의 장점도 있었다. 첫째로 차분한 목소리와 말투는 활력 있는 목소리만큼이나 멋진 개성이다. 오후 2시의 라디오를 이끄는 활기찬 목소리가 있는 한편, 밤 10시의 라디오를 진행하는 고요한 목소리도 있다. 모임의 성격은 라디오 채널만큼이나 다양하다. 모임장의 성향과 목소리 톤이 모임의 성격을 만들고, 그 성격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둘째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모더레이터의 능력은 모임장에게 생각보다 더 중요한 자질이다. 모임장의 역할은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도 다른 모임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반응하고, 기억하는 것이라는 걸 되새겼다. 말을 잘하려고 하기보다 잘 들어주는 것이 모임의 만족도를 높이는 핵심적인 능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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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의 인간관계에 한계란 없다


여전히 모임을 진행하는 날이면 긴장한다. 말을 이어 나가야 한다는 부담으로 손에서 식은땀이 난다. 그래도 어느새 등장하는 반가운 모임원들의 얼굴을 보면 다시 마음이 좋아진다. 사람의 장점을 금방 발견하고, 쉽게 좋아하는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면 모임의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소중해진다. 모임의 첫 시즌이 끝나고, 함께한 사람들에게 손편지를 썼다. 한 명씩 떠올리니 쓰고 싶은 말이 한 바닥이었다. 밤의 라디오처럼 말하고, 편지를 쓰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듣자. 더 이상 다른 모임의 모임장들과 비교하며 내가 가진 내향성을 깎아내리지 않기로 했다. 

내향인의 인간관계에 한계란 없다. 여러 개의 모임에 참여할 수도, 모임을 만들고 이끌 수도 있다. 장점을 발견하는 관찰력, 마음을 다해 좋아하는 진정성, 비언어적인 표현을 포착하는 눈과 경청하는 귀는 충분히 좋은 관계와 인연을 선사한다.


 

활동이 끝난 후 모임원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 저자 | 왓츠뉴 (@whaaats_new)

프리랜서 마케터, 에디터, 독립출판가.
내향인이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늘 새로운 시작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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