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의 육아: 나를 닮은 아이에게

202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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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들만큼 내향성을 미워할 순 없다. 내향인은 괴로웠던 기억들이 괴롭게 많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던 진동,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던 열, 그리고 아무도 몰래 시커먼 그림자 뒤로 숨었던 감각들이 생생하다. 그래서, 내향인들은 제발 자신의 아이는 내향성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도록 기도한다.


내 아이에게서 나와 같은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수치심으로 촘촘히 엮여 있는 이 기억들이 줄줄이 삐져나온다.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내향인의 상상력은 힘을 발휘해 머릿속을 온갖 걱정으로 가득 채우고, 내향인을 공포에 떨게 만든다.


      모래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 (사진 출처: Unsplash)



내 아이도 내향인이라니

내향인들은 내향성이 부끄럽다. 새로운 환경에 널뛰는 긴장감, 오직 혼자일 때만 채워질 수 있는 불리한 충전법. 그리고 작은 자극에도 영향을 받는 민감함은 대게는 유리하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을 바라보며 잘못된 점을 고치려 했던 내향인들은 너른 배포, 밝은 에너지, 담대함을 가진 척 위장하며 어른이 되었다. 내향인에게 내향성 감추기는 오랜 생존 방법이었다.

내향인 부모는 내향인 아이가 부끄럽다. 뒤로 숨는 아이, 멀리서 지켜보는 아이,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하는 아이에게 - 앞으로 나오너라, 부끄러워 하지 말거라, 크게 말하거라 하는 말들로 자신도 가지지 못한 것들을 소리내어 말하기 시작한다. 아직 위장을 배우지 못한 아이의 내향성은 더 또렷하고 분명하다.


네가 나로 자라면 어쩌지

내향인의 육아는 ‘잘 자라고 있구나’ 하는 확신보다 ‘나 때문에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는 의심에 늘 오르락내리락 파도를 탄다. 원대한 체력과 지구력이 요구되는 육아라는 파도타기에서 내향인의 지독한 걱정은 낙차를 더 크게 벌려, 더 지치게 만든다.

내향인 부모는 그래서 괴롭다. 감추고 싶었지만 결국 삐져나온 주저함이, 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나는 왜’ 하는 자책으로 이어져 오랫동안 자신을 비난한다. 들키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나를 닮은 아이에게서 결국 발견하고야 말 때, 나의 과거와 아이의 미래가 정확히 겹쳐 그려진다. 


엄마와 아이 (사진 출처: Unsplash)



내가 너에게 준 것

내향인의 육아는 정신없는 소란보다, 정답이 없는 혼란으로 더 어렵다. 내향인으로서 육아가 더 편하게 다가올 것이라고 기대한 적이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를 필요로 하는 작고 소중한 생명과 깊은 관계를 맺는 명확하고 고요한 그림을 언제나 상상했었다.

아이의 특별히 수줍고 조심스런 성향에 대해 걱정스러운 반응을 마주할 때,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어렵다. 내 아이를 둘러싼 사람들을 또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나는 아이에게 두려움, 주저함, 그리고 긴장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성향을 물려주고야 말았다.


나는 너를 특별히 안다

나는 특별히 조용한 아이였다. 남들보다 더 많이 긴장하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와 남 모두에게 항상 특별한 노력이 요구되었다. 말을 꺼내는 것, 인사하는 것, 손드는 것 - 주목하게 하는 것이 항상 어려웠다. 내가 만들 파장에 미리 겁을 먹고 자주 말과 행동을 삼갔지만, 조용해서 특별히 주목받을 때가 많았다. 

놀이터에서 친구와 방방 뛰어놀기보다 혼자 조용히 흙을 만지는 아이를 보며, 아이에게 물려준 나의 모습을 확인한다. 내향인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은 아이에게 물려준 한계를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을 탐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안다. 나는 너를 특별히 안다. 부디 너는 나를 통해 안전히 이 세상을 탐구하기를. 이미 아이는 자신만의 세상을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자 | 이마지(Lee Ma Jee)

미술 전공자, 미술 분야 N년간 활동한 기획자/행정인, 똑닮은 내향적인 아들을 키우는, 대한 내향 워킹맘

✍🏻 블로그:  https://page-oh.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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