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내향인 vol.05
브랜드 마케터 <김상민>
"오히려 내향인이라서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배달의민족 10년차 브랜드 마케터'. 김상민 님의 수식어를 들으면 대외적 소통에 능하고 사교적인 외향인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적막을 마주할 때 비로소 평온함을 느낀다는 상민님은 I 성향 90%의 순도 높은 내향인이라 말합니다.
배민 뉴스레터인 ‘주간 배짱이’를 비롯한 다양한 캠페인을 기획할 때, 내향인의 기민한 눈치와 섬세함이 빛을 발했다고 하는데요. 에세이 <아무튼 달리기>와 <낯가림의 재능>을 펴내고, 트레바리와 밑미 등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이어가는 상민님은 '내향인 인플루언서'의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내향형 직장인이 팀을 이끌고 회사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던 방법, 그리고 예민함을 재능으로 활용하는 법에 대해 상민님의 진솔한 답변을 들어보았습니다.
✨ 상민님은 언제 가장 내향적이라고 느끼시나요?
사람들과 있다가 집에 갈 때요. 사회 생활용 가면을 쓴 채 제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서 마침내 혼자 남았을 때, 그때 진짜 나와 만나는 기분이 들어요. 익숙하고 편안한 세계에 들어섰다는 느낌이랄까요. 요즘 사람 만날 기회도, 함께 어울리는 시간도 많아지면서 가끔 나의 내향성이 옅어졌나 싶을 때도 있지만 기어코 혼자 집에 가려는 저를 볼 때마다, 그때 느끼는 편안함의 감각과 마주할 때마다 여전히 순도 높은 내향인이란 생각을 합니다.
✨ 배달의민족 브랜딩실 배짱이팀의 팀장으로 일하셨었죠. 내향인으로서 규모 있는 회사의 팀을 이끄는 것이 쉽지 않으셨을텐데요. 어떤 비법이 있으셨나요?
처음에는 너무 부담이었어요. 자신도 없었고요. 내가 뭐라고 팀을 이끌고 팀장 노릇을 하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꼭 리더가 한 가지 모습일 필요는 없잖아요. 멋지고 카리스마있는 리더가 있다면 팀원들을 살뜰히 챙기고 헤아리는 서포터로서의 팀장도 있을 테니까요.
정형화된 리더의 모습에 저를 끼워 맞추기보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에 더 집중했어요. 또 내향인이 조직 생활에서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불안이 있거든요. 누구보다 그걸 잘 알기 때문에 모든 팀원이 안정감을 갖고 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고민했던 거 같아요. 오히려 내향인이라 보이는 것들이 분명 있더라고요.
✨ 배달의민족 뉴스레터 ‘주간 배짱이’와 다양한 캠페인을 기획할 때, 내향인의 섬세함이 큰 무기가 되셨다구요?
돌아보면 그랬던 것 같아요. 요즘처럼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신경 써야 하는 가치들이 많을 땐 눈치가 빨라야 하거든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말을 했을 때 어떻게 받아들일지 기민하게 가늠하는 능력이죠.
조금 슬픈 말이지만 내향인은 늘 눈치 보며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사회의 많은 선이 외향인을 기준 삼아 그어져 있기에, 매번 이게 맞나, 이래도 되나 하는 불안을 마음 한편에 품고 살아왔죠. 그렇게 습관처럼 자리한 눈치가 대중과 커뮤니케이션할 때 잘 작동했다고 생각해요.
또 굳이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 없지만 또 굳이 그렇게까지 생각하고야 마는 내향인의 기질이 캠페인을 기획할 때 디테일로 드러나기도 하죠. 고객 입장에서 이런 것까지 신경썼구나 하는 부분이 내향인 특유의 예리함이자 섬세함이라고 생각해요.
✨ 마케터로 일하신지 10년차가 되셨어요. 사회 생활을 하며 가장 어려울 때는 언제인가요? 그런 상황에서 상민님은 어떻게 처신하시나요?
아무래도 마케터란 직업 자체가 굳이 따지면 외향인과 더 잘 맞는 게 사실이에요. 일면식 없는 사람들에게 우리 제품을 사달라, 우리 서비스를 이용해달라 안간힘 쓰며 외치는 게 내향인의 속성과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죠. 그래서 커리어 초반에 어려움이 많았던 것 같아요.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과 대면하고 말을 걸고 권유하는 빼어나 마케터와 나를 비교하면서요.
그런데 브랜드 뒤에 숨으면 되더라고요. 자연인 김상민으로서가 아니라, 브랜드의 가면을 쓰고 한다고 생각하면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한번 두번 쭈뼛거리지만 시도해 보고, 의외로 잘 해내는 내 모습에 자신감을 얻고, 그럼 그 자신감으로 더 많은 걸 해보는 선순환이 만들어졌어요. 그렇게 10년 차까지 오게 됐구요. 지금도 내향인으로서 어려운 순간들과 직면하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감각이 몸에 배어 있어서 곧잘 (울면서) 해내고 있어요.
✨ 내향인이 겪는 다양한 고충을 에세이 <낯가림의 재능>에 담아내셨어요. ‘내향인’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게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책에는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셨는지 소개해주세요.
책을 쓰는 건 제 삶 속에 스민 이야기를 골라 펼쳐 내는 과정인데요. 세 번째 책이었던 <아무튼, 달리기> 출간 후 그 이야기 곳간이 텅 비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다 가져다 써버린 거죠.
그래서 이번에는 곳간에서 빼다 쓰기보다, 곳간 그 자체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곳간의 구조를 살핀다는 건 저라는 사람의 내면 구조를 들여다보는 일이었고, 그 중심에 내향인의 기질이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다음 책의 주제가 정해졌어요.
<낯가림의 재능>은 타고난 기질을 내내 부정하며 살다 끝내 받아들이고 대면하는 이야기입니다. 내향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과 그 속에서 안간힘 쓰는 분투기고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 쓰면서도 망설임이 많았는데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완성했어요.
✨ 회사 밖에서도 북토크나 강연, 소모임 등 다양한 행보를 펼치고 계세요. 이런 활동들을 보면 ‘상민님, 정말 내향인 맞나요?’라고 여쭤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저도 제가 의아할 때가 많아요. 이걸 어떻게 다 하고 있나 싶죠. 그럼에도 지속할 수 있는 건 막상 해보니 하게 된다는 아주 무심한 이유 때문입니다. 미사여구를 붙이고 싶지만 솔직한 마음은 그래요.
물론 쉽지 않죠. 겉으로 태연한 척해도 여전히 강연 시작 전이나 북토크를 앞둔 날이면 심장이 터질 듯 떨려요. 그런데 막상 그 시간이 닥치면 어떻게든 또 해내더라고요. 그게 계약에 의한 약속 때문이든, 이 시간을 위해 먼 길 달려온 분들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든, 아니면 저 스스로의 떳떳함을 위해서든요.
그래서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많이 신경 쓰고, 연습해요. 타고난 재능이 없으니 노력으로 채우는 거죠. 가령 엊그제 마케팅 강연을 했는데요. PPT 160장짜리 90분 강연인데, 저는 그걸 다 외우고 있어요. 언제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가고, 중간에 어떤 유머를 칠지까지도 다 머릿속에 계산되어 있죠. 떨림을 덮을 만큼 연습하면 긴장감은 여전해도 결과는 잘 낼 수 있습니다. 그게 비법이라면 비법이겠네요.
이렇게까지 하는 건 다양한 외부 활동이 제 삶을 더 다채롭게 만들기 때문이겠죠. 소셜한 사람이 아닌지라 술 약속도 거의 없는 편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도 없는데 이런 외부 활동들이 그 빈틈을 메워줍니다. 덕분에 아주 작고 편협했을 수 있는 제 세계가 점점 넓어지는 기분이 들어요. 그 새로운 경험을 발판 삼아 저는 또 새로운 이야기를 써갈 수 있고요. 나름의 선순환이라 생각해요.
<밑미> 리추얼 메이커 🏃♂️ <트레바리> 독서 클럽장 📚
✨ 마지막으로 내향형 직장인이 회사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팁이나 조언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내향적인 사람이 사회생활에서 흔히 하는 실수가 스스로 한계선을 긋는 것 아닐까 해요. '나는 내향적이라 이런 건 못해, 저 사람처럼 저렇게 할 수 없어' 같은 생각요. 내향인에 대한 편견을 자기 자신에 대입한달까요.
물론 이해 못 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공감하죠. 내향적 성향이 조직 생활에 잘 맞는다고 할 순 없으니까요. 저도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체득한 진리는 구원은 스스로 얻어야 한단 사실이었어요. 결국 제가 칼을 빼 들고 해야 하더라고요.
회사 생활에 위축되어 있다면 일단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내가 쓰임을 다할 수 있는, 심지어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겁니다. 정말 소소한 것도 괜찮아요. 그런 경험을 하나하나 쌓아가며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축적하는 게 중요해요.
솔직히 말해 세상은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별 관심 없습니다. 그러니 일단 한 번 해보세요. 용기의 설득이 필요한 대상은 의외로 나 하나일 때가 많습니다. 내가 나를 인정하고 허용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다양할 거라 확신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