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 교사가 아이들을 대하는 법>

: 매일 30명을 만나며 하루종일 말하지만, 내향인입니다.


말하기보다는 듣는 것이 편한 사람, 바쁜 일상에서 혼자만의 충전이 꼭 필요한 사람, 갑자기 취소된 약속이 은근히 반가운 사람, 사람이 많은 곳에 있으면 왠지 모르게 기운이 빠지는 사람. 전부 나의 이야기이다. 그렇다. 나는 코끼리코를 10바퀴 쯤 돌고 보아도 내향적인 사람이다. 이런 나의 직업은 “선생님”이다.

 

첫 학교 발령을 받고 얼마동안은 퇴근 후 거의 묵언수행을 하였다. 하루동안 해야 하는 말의 총량을 학교에서 다 쏟아내고 온 탓에 집에 돌아와서는 누군가와 대화할 에너지가 없었던 것이다. 내향성이 다분한 나로서는 텐션이 우주를 뚫을 기세인 어린이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 만으로 블랙홀에 빠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동시에 어린 아이들의 그 지치지 않는 텐션이 신기하여 그들을 관찰했다. 시끄러운 아이, 뛰는 아이, 깔깔거리는 아이, 이 모든 상황을 가만히 구경하는 아이, 친구와 조용히 노는 아이,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는 아이까지. 교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활기찬 건 아니었다. 교실이라는 작은 우주 안에서도 내향인과 외향인이 공존하는 셈이다.


흔히들 말이 많거나 활동적인 아이가 돋보일거라 생각하지만, 희한하게도 내 시선에는 그와 반대되는 조용한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이토록 제각각인 아이들과 내향적인 선생님이 1년 간 한 공간에서 잘 지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원칙들 중 일부는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학급운영에 자리를 잡을만큼 중요한 것이 되었다. 그 중 2가지만 소개해보려 한다.

“발표하고 싶지 않으면 안해도 됩니다, 꼭 말로만 의사표현을 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내향인으로서 가장 난처한 순간은 바로 ‘말하기를 강요받는 상황’이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듣다가 내 이야기를 할 차례가 오면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거나,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해버릴 때가 있다. 어느 정도 사회화가 된 성인들은 경우에 따라 템포조절이 가능하지만 투명한 어린아이들에게는 그 완급조절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적어도 나의 교실에서는 말하고 싶지 않거나 말하기 싫은 아이들이 귀가 빨개지도록 민망해지는 순간이 적길 바랐다. 모임이나 회의자리에서 주로 듣는 쪽을 택하는 나로서는 너무나도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이었다. 더군다나 아이들은 종종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으로 크게 두려워하는 발표불안을 겪기도 한다. 발표불안이 적절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지기도 한다. 때문에 나의 교실에서는 의견을 자유롭게 피력하되 발표할 것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대신 의사표현의 창구로 기존의 거수발표 이외에 다양한 방식을 마련해두었다. 포스트잇이나 게시판, padlet이나 채팅을 이용한 발표 등의 방법을 사용해 말로서 표현하는 것 이외에 자신의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는 식이다. 이렇다보니 교실에서는 자연스럽게 글쓰기수업이 많이 진행된다. 글로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단정한 언어로 표현하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에게서 제법 작가같은 면모를 발견할 때가 있다. 어떤 식으로든 제 목소리를 낼 줄 안다면 환영이다.


이렇게 하여도 교실은 언제나 소란하며 아이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생각을 드러내며 생활한다. 말하는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에서는 목소리가 크고 활달한 아이들이 더 눈에 띄며 중요한 의사결정 역시 주로 이 아이들을 주축으로 이루어진다. 이들에게는 “적극적이며 외향적”이라는 피드백이 뒤따른다. 그렇다면 조용하고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는 아이들은 “소극적”일까?


여기에 내향성과 외향성에 대한 흔한 오해가 숨어있다. 내향성과 외향성의 가장 큰 차이는 에너지의 방향이다. 내향인은 관심과 에너지가 내부로 향하는 사람, 외향인은 관심과 에너지가 밖으로 향하는 사람이다. 흔히들 생각하는 내향적=소극적, 외향적=적극적으로 간단히 매칭되지 않는다. 내향적이더라도 본인의 관심사에 있어서는 수다쟁이가 될 수 있으며 끝없이 디깅하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한다. 다시말해 내향성이나 외향성은 상대적인 기질일 뿐이라는 점이다.



“처음 만나서 곧바로 친해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서로 살짝 지켜봐주세요”

새학년이 시작될 무렵 가장 많이 하는 말이자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누군가가 말을 걸어준다면 격하게 환영할 자신이 있는데 먼저 말을 걸 용기는 없는 사람이다. 교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파워 인싸이자 누구와 있어도 오디오가 빌 틈이 없는 어린이들은 개학 한지 일주일이 되기도 전에 구름떼같은 친구가 생긴다. 하지만 나처럼 누군가 먼저 말걸어주길 기다리는 아이들도 분명 있었다. 이 물과 기름같은 조합이 한 공간에서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탐색시간이 필요하다. 마치 소개팅에서 서로 이런저런 질문과 스몰토크를 주고 받으며 두 번, 세 번째 만남을 기약하며 탐색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늘 당부하길 “천천히 지켜보고 친해지자. 우리는 1년을 함께 해야 해”라고 한다. 친구를 빨리 사귀지 못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이해하기에, 그럴 수도 있는거라며 달래주고 싶어서다. 또한 빠른 속도로 가까워진 사이가 순식간에 멀어질 수도 있음을 이 어린 아이들에게 쉬운 언어로 설명해주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새학기를 시작할 때는 최대한 여러 가지의 친교활동을 구성한다. 주먹구구식으로 일어나 자기소개타임을 갖는 식이 아닌 자기소개 책자를 만들어 서로 돌려 읽거나, 소그룹 활동을 하는 식으로 한다. 바로 친해지지 않아도 되고, 천천히 나와 맞는 사람을 찾아보아도 좋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을 점찍어 가까이 다가가도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는 셈이다.

사회는 외향인을 지지한다. 똑부러지게 제 목소리를 낼 줄 알고 적극적이며 누구와도 쉽게 어울릴 줄 아는 유니콘같은 이에게 박수를 쳐준다. 이런 분위기에서 선생님이 되어보니 우리 사회에서 내향적인 아이, 외향적인 아이에게 어떤 피드백이 뒤따르는지를 더 정확히 실감하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내향성과 외향성은 동전의 양면이 아니다. 기질의 차이일 뿐 우월의 차이는 아니며 완벽히 내향적인 인간도, 완벽하게 외향적인 인간도 없다. 심리학적으로 우리는 대개 내향적인 부분과 외향적인 부분이 섞여 있으며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는 친화력이 넘치고 활동적이며 성격까지 나이스한 외향인 판타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내향적인 성격이 핸디캡이라고 생각하며 오랜 시간 고민했던 선생님은 이제 그 판타지를 내려놓았다. 제각각인 아이들이 사회적인 기준에 자신을 억지로 끼워맞추지 않기를, 말수가 적거나 수줍음이 많은 것을 본인의 단점으로 생각하며 자라지 않기를 바란다.

저자 : 허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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