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는 진짜를 알아본다.

2025-02-28



「고독에게」 첫 발행의 순간



문장 보부상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지면은 말할 것도 없고, 작업할 시간과 생활을 이어갈 보상도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에선 언제나 사람이 가장 귀한 법. 세상에 내보일 의도로 글을 썼다면 우선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공개된 모든 글을 ‘눈’으로 완성해 주는 사람들. 세상은 그들을 독자라고 부른다. 

다양한 독자를 만나면서 느낀바. 특정 글(들)과 그 글(들)을 즐겨 찾는 독자 사이에는 얼마간 유사점이 있다는 것. 어디든 예외가 있고, 일일이 조사할 수 없으므로 단언해선 안 되지만 내 경험으론 그렇다. 

유쾌한 글을 공개하면 즐거움을 추구하는 독자들과 만난다. 본문보다 재치 있고 장난스러운 댓글이 달린다. 반면 진지하고 어두운 글을 쓰면 해당 주제로 고민해 본 독자들과 연결된다. 생각지 못한 방향에서 다양한 의견과 경험이 뒤따른다. 

그러면 ‘내향인 농도’ 가득한 원고를 공개할 땐 어떨까? 



진짜는 진짜를 알아본다 

기년 째 「고독에게」라는 이름의 편지 뉴스레터를 발행 중이다. 평소 잘 꺼내지 않는, 내면에 머무는 소리를 편지로 보내는 뉴스레터인데, 이름과 설명만 보더라도 얼마나 ‘내향적인’ 뉴스레터인지 감이 오지 않는가. 

매달 또는 한 달에 두 번꼴로 세상에 별 필요 없을 법한 고백이 가득 담긴 편지를 보내는데 발행할 때마다 아차 싶다. 쓸데없는 얘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고, 부끄러울 만큼 속을 훤히 보여준 것도 같아서.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선생님(우리는 서로를 이렇게 부릅니다)들의 답서가 온다. 다만 잘 보고 있다는 안부부터 일과 사랑에 관한 내밀한 진심이 담긴 답서들. 그것을 읽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고독하고 있구나. 그래서 다른 곳에선 못 전할 마음을 여기선 나누는구나.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있구나. 그러므로 이 편지 세계의 거주민은 (편지를 주고받는 순간에 국한될지라도) 단연 내향인일 테다. 서로를 알아보는 일. 여백을 들여다보는 일. 그건 내향인이 가장 잘하는 일이니까. 



「고독에게」 선생님들과 함께 읽은 책                                           열번 째 「고독에게」 티저




편지라는 형식 

말과 달리 글은 조금 더 정제할 기회가 있다. 뱉고 나서 되돌릴 수 없는 말보다 보내기 전까지 수정이 가능한 글이 더 섬세할 수 있다는 데 이견 없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편지는 고치고 기운 마음을 담기에 가장 적합한 형식이다. 

손 편지든 메일이든 누군가를 떠올리며 한 자 한 자 적어나가며 ‘이런 말을 하지 말자’ 지우고 ‘이 말은 꼭 해두고 싶어서’ 한마디씩 덧붙이고 있노라면, 편지란 글이 아니라 마음을 쓰는 일이라는 생각도 더러 든다. 수신인을 향한 고유한 마음. 그걸 언어로 옮겨 적으면 편지가 된다고 해야 할까. 

우리가 편지를 쓸 때 반대편에는 늘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게는 선생님들이 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곳에. 언제든 마음 부칠 수 있는 곳에. 편지만큼 내향인의 소통법과 닮은 형식은 없는 것 같다. 이토록 섬세하고 가만한 방법으로 느린 진심을 전할 수 있는 건. 



희미하고 분명하게 

세상일이 대체로 그렇지만, 먹고 사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보상이 약속되지 않은 일은 미루게 된다. 내게는 뉴스레터 발행도 그렇다. 기분 따라 변덕 부리면 안 될 일이건만 일상의 무게에 짓눌리다 보면 도무지 현재의 마음을 담아 보낼 수 없을 때가 있다. 

비정기 발행을 명시한 것도 그것을 예상해서인데, 연락 끊긴 친구에게 다시 안부를 묻는 건 겸연쩍지만 격조하던 선생님께 편지를 보내는 건 불편하지 않다. 오래 쌓인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엔 넉 달 만에 편지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 답서가 도착했다. 선생님들은 연락 없이 떠돌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가족을 대하듯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반겨주었다. 잘 왔다고, 그저 잘 왔다고. 따뜻한 물 한 잔 내어주듯이. 

편지를 쓸 때 또는 답서를 읽을 때마다 실감한다. 사는 게 바빠 잠시 뜸해져도 내겐 언제든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선생님들이 나의 집이 되어준다는 것. 무엇보다 우리가 희미하고도 분명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



👨🏻‍💻 글 | 이학민 (@dltoqur__)

편지 뉴스레터 「고독에게」 발행인. 경계 밖의 사람을 지켜보는 버릇이 있다. 

반가운 선생님들, 오늘도 샤인하세요!